김훈의 <칼의 노래>를 읽으며,.
Journalist : 지유철 | Date : 01/05/30 10:58 | view : 215692     
 
j33luke@kornet.net   

1.
김훈은 제가 좋아하는 글쟁이이자 언론입니다. 그가 낸 책은 다 읽었고, 시사저널의 편집국장 시절(아마도 95년도일겝니다만)에는 시사저널로 잠시 찾아갔었습니다. 독자로서 말입니다. 무엇보다 지금 제가 복음과 상황에 쓰고 있는 지유철의 선택과 옹호는 그가 오래 전 미학사란 출판사에서 낸 <선택과 옹호>란 제목을 도용(?)한 것이지요.

2.
작년, 그러니까 제가 한겨레21의 쾌도난담이 나가기 바로 전 주간 그는 바로 그 코너에 나와서 한 이야기 때문에 결국 시사저널을 떠났습니다. 시사저널이 발칵 뒤집혀 졌고, 젊은이들이 난리법썩을 떨었지요. 저런 마초가 시사저널의 편집 책임자라는 사실을 도저히 수용할 수 없다는 것이었죠. 저 역시도 당혹스러웠습니다. 충격이었지요. 그러나 충격은 이내 잠재워졌습니다. 

3.
전 중앙일보 기자 오동명은 나의 문화 유산 답사기의 저자 유홍준의 이중성과 권위주의를 직접 경험하고는 문화 유산 답사기를 쓰레기통에 처박았다고 썼습니다. 그 글을 읽은 많은 젊은이들이 오동명을 따라서 유홍준의 책을 쓰레기통에 처박았습니다. 제 주변의 후배 중 한 사람도 그렇게 했으니까요. 저 역시도 많은 갈등을 했습니다만 버리지는 않았습니다. 화딱지가 나서 제 서재 한 구석에 처박기는 했습니다.  단순 비교를 할 순 없읍니다만 김훈의 그러한 성향이 있다는 것을 앎에도불구하고 제가 15000원 들여서 그의 책을 샀고, 그의 책을 읽는 것은 유홍준이란 인간을 거의 경멸하면서도  그의 책을 버리지 않는 이치와 대동소이합니다. 

4.
제가 유홍준의 책을 버리지 않고, 김훈을 통해 아직도 감동을 경험하는 것은 제가 모든 인간의 전적부패를 믿기 때문입니다. 손봉호 교수님의 표현을 빌리면 하나님 없는 인간은 물론 하나님 앞에 선 인간의 별 수 없음을 믿기 때문입니다. 저는 김훈을 통해 감동을 받고, 유홍준의 지식 속에서 내가 필요한 부분을 취하는 것이 저들에 대한 신뢰를 배신당했다는 식의 울분을 감추지 못하면서 저들의 모든 걸 부정해 버리는 순결주의자들보다 훨씬 성경적이라 믿습니다. 성경적 인간관을 견지한다는 것은 모든 인간에게 장점과 단점이 있다는 것을 동시에 인정하는 게 아닐까요? 만약 김훈이나 유홍준를 심판하는 잣대 때문에 저들의 책을 버려야 한다면 어쩌면 세상의 도서관에 있는 책 60-70퍼센트는 버려야 하지 않을까요? 이렇게 따져 나가다 보면 한국 젊은 지성인들을 그렇게 열광시킨 고든 맥도널도의 <내면세계의 질서나 영적 성장>이나 그의 저서들도 쓰레기 통에 버려야 할 지 모르겠습니다. 그도 불륜에 빠졌었고, 그로 인해 그의 일터를 본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떠나야 했었으니까요. 그 뒤로 그의 회개가 인정이 되고 받아들여져서 다시 컴백했다지요?

5.
혹시 이러한 저의 생각이 너무 프래그마티즘쪽으로 경도된 게 아니냐고 지적하실 지 모르겠습니다. 그건 제가 답변할 대목은 아닙니다만, 저는 주변에 계산과 수에 밝은 인간을 아주 싫어한다는 정도만 적어두기로 하지요. 제가 아쉬움을 느끼며, 아니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하여 저들에 대해 연민을 느끼며 저들의 책을 손에서 놓을 수 없는 것은 그것이 저의 인간 이해기 때문입니다. 반면교사라는 말이 있지요. 저들의 이중성을 보면서 나의 이중성을 확인하고, 저들의 이중성을 지적하면서 동시에 저들로부터 배울 수 있다면 그게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과 죄많은 인간의 한계와 차이를 인정하는 또 다른 표현이라고 한다면 너무 지나칠까요? 때문에 저는 가능한 배울 것입니다. 기회가 된다면 누구에게든 배우겠다는 생각입니다. 그러나 아직 여기까지는 저도 곤란합니다. 저는 조갑제나 이회창이나 한나라 당으로 간 진보진영의 이재오나 김문수 따위의 인간들에겐 배우고 싶은 맘이 없습니다. 그렇게 따질 때 유홍준의 해악이 이재오 김문수 보다 덜 하냐는 질문이 나오겠지요? 그걸 모르지 않지만 굳이 따지고 싶진 않습니다. 그게 저의 이중성이고 편견이라 한다면 기꺼이 인정하겠습니다. 만약 이재오나 김문수나 유홍준이 함께 살을 맞대고 살거나 같은 사무실이나 교회, 아니면 저와 정기적으로 만나는 사람들이라면 매우 까다롭게 따졌겠지만, 현실에서 저들과 무관할 수 밖에 없는 저로서는 그럴 필요를 못 느낍니다. 

6.
오늘도 저는 하나님께서 함께 살게 하신 여러 사람들을 보면서, 아니 저들의 장점과 단점으로 인해 울고 웃으면서 가능한 저들로부터 배우고자 기를 쓰고 있습니다. 원하기는 저의 눈이 좀 더 공평해져서 어떤 사람의 장점과 단점을 동시에 볼 수 있게 되길 소망합니다. 또한 누구의 장점 때문에 단점을 눈감아 주거나 누구의 작은 단점 때문에 그의 커다란 장점을 보지 못하는 장님이 되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저는 김훈의 책을 만지작 거립니다.  

7.
김훈의 <칼의 노래>는 이순신 장군을 1인칭으로 한 소설입니다. 박정희에 의해 너무 때가 많은 이순신이라 처음엔 김훈이 지난 여름에 낸 책을 통해 이순신을 말했을 때 저는 "김훈이 웬 이순신?"이란 반응을 보였습니다. 그러나 이번에 나온 지인의 서평을 보니 김훈은 20년전부터 이순신에 빠져 있었더군요. 술자리에서 그는 늘 이순신에 대해 신들린 사람처럼 이야기 했다는 것입니다. 아, 이 호흡의 유장함이여. 20년을 숙성시켜서 그것을 세상으로 내놓은 지구력. 내게 필요한 것이 바로 이것이란 점을 다시 한 번 생각합니다. 여기에 비해 나는 바람에 날리는 깃털입니다. 무엇을 하나 배우면 금방 써먹어야 하는......

8.
자신이 지금 자신과 치열한 싸움 중이라면 일독을 권합니다. 영웅 이순신이 아니라 인간 이순신의 모습이, 썩은 조정과 삼킬 듯 달려드는 외세 앞에서 자신과 민족을 지키고자 하는 한 사람의 고뇌와 연민이 잘 녹아 있는 작품이라 사료됩니다. 출판사는 생각의 나무이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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